지지난 토요일에는 대학로로 '신나는 예술여행' 취재를 나갔습니다.
신나는 예술여행은 문화를 즐기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복권기금으로 진행되고 있는 문화나눔 사업이랍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문화 환경이 좋지 않은 농어산촌이나 군대, 병원 등을 직접 찾아가 다양한 자원을 나누며 함께 즐기고 있지요.
이날 찾아간 곳은 공공문화개발센터 유알아트의 전시회 '빛을 만지다'였습니다. 유알아트는 시민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가는 공공문화를 추구하는 문화단체입니다. "나로부터 출발하는 에너지의 파장"이 퍼져나가고 서로의 에너지가 연결되어 '우리'가 되는 평화로운 공존의 예술을 창조하고자 한답니다(설명이 참 아름답지요?)
이러한 방향성을 가지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인 '빛을 만지다'는 점자와 촉각그림을 통해 감각의 세계를 풍부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랍니다. 점자에 대해 알리고 감각도서라고 하는 점자촉각그림책을 만들고 보급하는 역할을 합니다.

토요일 아침 대학로는 한적합니다. 맨날 높은 구두만 신다가 운동화를 신으니 두 발이 날아갈 듯.
사실 전시회라고 하여 그저 금새 보고 돌아나오면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금새 나오기는커녕 주저앉아 한참을 놀다 왔습니다. 벽에 주르륵 붙어있는 '별의 문자'들과 감각도서들에 단단히 매료된 것이지요.

작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별의 문자'가 시작됩니다.
별의 문자는 점자의 자음과 모음을 멋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요.

문장과 그림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자음 ㅂ을 점자와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ㅂ이 모음 앞에 붙는지 받침으로 오는지 구분하기 위해 초성 ㅂ과 종성 ㅂ을 다르게 씁니다. 아래에는 점자 ㅂ을 활용해 "바.라.만.보.다"라는 문장을 그림으로 표현해냈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가 하나의 작품을 이루어 자음 ㄱ부터 ㅎ까지, 모음 ㅏ부터 ㅣ까지 벽을 둘러가며 전시되어 있습니다. 작품은 아이들 눈높이로 전시되어 있어 반드시 바닥에 주저앉아 손으로 만져가며 감상해야 한답니다^^
전시장 중앙에는 창작 탁자가 있습니다. 실, 스폰지, 색연필 등 여러 가지 재료를 활용해 원하는 것을 만들어보는 공간입니다. 엄마와 전시장을 찾은 네 살짜리 한영군도 탁자에 앉아 작품 제작에 몰입했습니다.

창작 탁자에서 예술 활동 중인 아뤼스트 모자 :)
이날 한영군은 작품 <빵>을 완성했습니다. 보드라우면서도 보송보송, 말랑말랑한 빵을 저렇게 표현해낼 수 있다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요!
작품을 전시하고 기념 사진까지 한 장.

정면샷은 절대 거부하는, 뭘 좀 아는 꼬마 예술가님^^
한 켠에는 유알아트가 만든 감각도서가 있습니다. 감각도서는 말 그대로 다양한 감각을 활용해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점자촉각도서라고도 하는데요. 본문의 문장은 점자로, 그림은 질감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입체 재료들로 구성되어 시각장애인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지요. 이렇게 말이에요.

<누가 와서 먹나요> 중 한 장면. 덕분에 저는 생전 처음으로 고슴도치를 만져보았습니다 :)
저는 감각도서를 처음으로 읽어봤는데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소리 내어 문장을 읽어주면 저는 눈을 감고 손으로 그림을 읽어갑니다. 눈만 감았을 뿐인데 손을 뻗어 무언가를 만지기가 왜 이리 망설여지던지, 뭔가 물컹한 것이 잡혔다가 까슬까슬한 것이 잡혔다가 그 느낌이 새롭고 묘해서 손을 떼지 못하고 자꾸만 만지게 됩니다. 선생님이 손을 끌어 "이게 감이고요, 이게 고슴도치에요"라고 일러주기도 합니다.
나중에 다시 눈으로 책을 읽어보는데 손으로 읽은 것과는 참 다릅니다. 손으로 읽으면서 더 크고 무섭게 생겼을 거라고 상상했던 그림은 의외로 귀여운 장면이기도 하고요, 손으로 읽었을 때와는 전혀 딴판인 그림도 있습니다.
감각도서의 시작은 시각장애인들도 책을 읽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는데 직접 읽고 보니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을 손으로 더 많이 느낄 수 있고, 더 많은 걸 상상할 수 있기도 하고요. 유알아트의 김지나 사무국장님께서 "감각도서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몸과 정신의 경계가 사라진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저 두어 권의 책을 읽어보았을 뿐이지만 무슨 뜻인지 알 듯했습니다.
유알아트에서는 <여우가 오리를 낳았어요> <누가 와서 먹나요>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를 감각도서로 만든 <강아지똥> 등의 감각도서를 만들었답니다. 전시 중인 <별의 문자>도 올 11월이면 책으로 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런 감각도서는 보시다시피 일일이 수작업을 거쳐야 하고 인쇄며 제본 등도 특수기법을 사용해야 해서 제작하는 데 많은 돈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점자를 얼마나 도톰하게 할지, 시각장애인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게 제본을 하고, 그림도 볼 때도 그림이고 만질 때도 그림일 수 있게 하고… 신경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그런지 보통 책의 5배 이상 들어간다고 하네요. 유통비도 적잖이 들어서 유알아트 홈페이지나 카페, 혹은 전시회장에서 책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유알아트의 촉각예술센터 멋진 상근 아티스트 분들 :)
'빛을 만지다' 전시는 올 12월 13일까지 둘째, 넷째주 토요일 이른 11시-늦은 7시까지 열립니다.
유알아트의 소개 문구가 멋있습니다.
경험상 정말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내 몸 혹은 어떤 경계에 갇혀있다, 한정돼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느껴보고 경험해보고 싶으신 분들에게도 추천입니다.
문의는 유알아트 홈페이지 혹은 02-745-1447로 하시면 되고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