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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충분히 크지 않아요. 너무 작아요."

그런 날이 있지요.
일상이란 그렇게, 비슷비슷한 일들을 반복하고 심장 위로 자잘한 빗금들을 그어가며 소소한 감정의 오르내림을 그저 감내해내는 것이지 않던가요. 그러다 어느 날에는, 그 일상이 유독 무겁고 아프게 느껴집니다. 평소에는 씨익 웃으며 지나가던 일들도 하나하나 마음 언저리에 쌓입니다. 말 한 마디도 서럽고 상대의 무심한 행동 하나에도 눈길이 오래 머무는, 그런 날.

하필이면 연극을 본 날도 그런 날이었나 봅니다. 의지할 이 하나 없는 듯 막막하고 사방이 길인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아이처럼 겁이 나고. 가을의 밤바람이 차갑긴 했습니다.
그날따라 내가 얼마나 작게 느껴졌는지. 꿈과 비전이 있고 열정이 있으니 서투른 부분은 채워가면 된다고, 재우쳐가지 말자고 씩씩했는데 또 마음이 마음같지만은 않아서 힘에 부치는 날이었습니다. 대단한 조언이나 거창한 격려도 필요없고 그저 한 마디의 따뜻한 위로가 고팠던 지도 모르겠습니다. 충분히 잘 하고 있는 거라고 누군가 진심으로 말해준다면.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척하던 인디언 추장 브롬덴이 목소리를 내어 저 말을 읊조릴 때 나는 내 마음에서 나온 말인양 느꼈습니다.
맥머피가 말합니다.
"넌 커. 충분히 크다구."
고개를 젓습니다.
"아니오 나는 너무 작아요."
다시, 맥머피.
"옳지, 저걸 들어봐. 저걸 들면 네가 크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아니오 나는 못해요. 나는 너무 작은 걸요."

나는 고개를 젓습니다. 몸으로 머리로 깨쳐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데 실력있는 동료와 선후배들 가운데 나는 까마득하기만 합니다.

이번엔 맥머피가 노래를 부르자고 제안합니다.
힘겨울 때는 신나게 노래를 불러서 삶의 균형을 맞춰줘야 한다며. 말도 되지 않는 노래를 불러제낍니다. "전기치료"를 받으면서도 그의 노래는 끝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다 잘될 거라고 주억거리며.

나는 노래를 부르는 대신 손을 꼭 쥐었습니다. 내가 원하던 따뜻한 말과 지지를 그가 해주고 있었습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고, 힘들수록 신나는 생각을 하고 무엇보다 나는 충분히 크다고, 할 수 있다고.

마침내 브롬덴이 한 마리 새처럼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갈 때 내 마음 속에 움츠리고 있던 새도 날개죽지를 펴는 듯합니다. 나는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요, 이렇게 큰데. 왜 그렇게 막막했던 걸까요, 이렇게 잘하고 있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인데 말이지요.

한참동안  빈 무대를 마주하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런 일상은 앞으로도 이어지겠지요. 어느 날엔가는 알 데 없이 우울하고 힘이 빠지기도, 그저 짜증스럽고 불만스럽기도 할 겁니다. 그러다 또 다시 씨익 웃고 어느 날에는 씩씩하고 어느 날에는 명랑하고 어느 날에는 모든 게 그저 잘될 것만 같이 행복하고 그렇게 오르고 내리겠지요. 그 평범한 오르내림 속에서 나는 내 어깨를 도닥여주는 또 하나의 기억을 얻었습니다. 힘들면 노래를 하고 그림자 놀이를 하면 되는 것을요 :)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2008/09/18-2008/10/19 정동 제일화재 세실극장

원작 캔 케시 번역 홍서희
연출 우현종
무대미술 최진규 조명 신호 아트디렉터 이창우
기획/제작 덕우기획/ 극단라이프씨어터
출연 김정석 정아미 정한용 박이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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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연극리뷰]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보고 - 제일화재 세실극장

    Tracked from 깊은 강은 흐름을 나타내지 않는다.....  삭제

    어느날 법원으로부터 싸이코패스라는 진단을 받은 맥머피는 레취드 간호사의 규율만 존재하는 정신병동으로 들어오게 된다. 여기에서부터 사회의 규칙을 대변하는 레취드 간호사와 개인의 억압된 자유를 저항하는 몸부림을 대변하는 맥머피의갈등이 시작된다. '싸이코패스'는 '감정이 없는 인간'을 지칭하는 정신학 용어라고 한다. 그럼 맥머피(정한용) 과연 싸이코패스일까? 레취드 간호사의 매서운 눈빛 하나에 자신의 의학적 판단조차 이야기하지 못하는 허수아비 의사지만,..

    2008/10/10 08:47
  2. Subject: 연극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 대해 투덜거리기

    Tracked from 貧乏自慢  삭제

    세실극장. 08/10/05 15시 공연 관람.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는 잭 니콜슨 주연의 영화(1975)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명작이 30여년의 시간을 넘어 여전히 유효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연극으로 재탄생했다. 줄거리와 주제는 검색엔진에서 보면 얼마든지 넘쳐나므로, 그런 것들은 생략. 또, 연극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 대해 좋은 평은 다른 블로그에서 ...

    2008/10/12 08:57
  1. 넷물고기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데미안라이스의 캐논볼 이라는 노래를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런날 .. ^^

    2008/10/10 00:52
    • storyteller.song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늘 Cannonball로 시작했어요. 멋진 추천곡, 적당히 흐릿한 날씨와도 맞춤이에요. 고맙습니다 넷물고기님 :)

      2008/10/10 13:27
  2. 섹시고니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에 느낌을 실이서 전달하는 방식이 참 좋네요.

    2008/10/10 02:50
  3. 해피아름드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울한 날도 있지만...
    웃을 일도..웃을 날도 더 많은 세상입니다...
    우리 힘내고 일어나 푸른 가을 하늘을 바라보자구요^^....

    2008/10/10 08:47
    • storyteller.song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해피아름드리님. 힘내서 웃고, 가을 하늘은 정말 높습니다. 하루종일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같아요. 해피아름드리님도 좋은 하루 되시기를 :)

      2008/10/10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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